힘들다

조중동/공중파만 보시고
강남에 사시며
신실하신 기독교인이신 부모님과

더이상 대화가 되질 않는다

30년간 그들에게 말 잘듣고, 속 한번 크게 썩인 적 없는 딸이
한순간에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며 남의 말에 쉽게 선동되는 좌파 딸이 되어버렸다
진짜 엄마 입에서 '사탄의 자식' 소리가 나왔어도 놀라지 않았을거 같다


그리고 미국에 나가있는 남편하고도 대화가 되질 않는다

오늘 유모차에 소화기 뿌리는 사진을 보고 대략 어이상실하여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이 한 말은 단 한마디
'부모가 무개념이구먼'

와이프가 한국에서 어떤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는지
정치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던 와이프가 왜 이런 말들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듣고자 하는 생각이 없다
'너 나랑 정치 이야기 할 생각하지마 관심도 없고, 그런 집회 나가는 사람들 신변 따위 관심없으니까'

이 집회가 왜 정치 이야기라 생각하는가
'나'의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민주주의'라 믿었던 나라에 대한 이야기다.


요즘은 가족들 사이에서 나만 고립된 느낌이다.
이 동네에 살면서 전경들에 의해 고립되는 것과 똑같아.
이 동네 사는게 죄라면 죄고.
내 일을 하기 위해 남편, 부모랑 떨어져서 혼자 사는게 죄라면 죄다.

그리고 가족들에 의해 고립되는 느낌은
정말 견디기 어려워서
차라리 다 신경끄고 싶은 심정이다
그냥 귀를 닫고 눈을 감고.

하지만 이 동네에 사는 한은....
귀를 닫아도 귀를 덮은 손을 통해 소리가 들리고
눈을 감아도 그 소리를 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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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기나긴 대화 끝에
남편과 나의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를 깨달았다.

남편은 '한국은 1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민주주의나 선진국이 되기 불가능한 나라'라고 인식을 하고 있었고
나는 '한국에는 아직 희망이 있고, 현재 민주주의 국가로서 성숙하는 진통을 겪는 것이다'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은 '경찰은 애당초 믿지 못할 존재들. 모든 집회는 정치적임'
그리고 나는 '그래도 경찰은 국민을 보호하는 존재. 특히 아이들에게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거라 믿음' 이란 인식.

여기에 대한 남편의 대답은
'넌 미국에서 너무 오래 살아서, 한국 사람도 미국 사람 같을 거라 믿는것 뿐.'

그리고 난 그 말에 대해, 사실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rally, 또는 시위라는 것은, 같은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하는 축제같은 행진.
아니, 축제같은...이 아니라 실제로 축제였다.
경찰이라는 존재는, 이 행진을 앞뒤로 보호(!)해주면서, 말 그대로 시위대를 시민의 일부로서 보호해주는 존재들이었다.

시민과 대치하고 시민에게 돌을 던지는 경찰은
내가 아는 민주주의의 경찰이 아니다
이 나라도, 내가 아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이 나라로 돌아온지 10년이 넘어가는데.
이 나라를 제대로 보게 되기 까지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거다.
이 나라에 대해 희망을 잃기 시작하게 되기 까지, 아니 희망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게 되기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면.
그럼 도대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걸까.

by 파냥 | 2008/06/28 22:19 | 삶의 이야기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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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초령사신 at 2008/06/28 22:44
힘..내세요.
저희집은 저 빼고 다 촛불 시위 하는 사람들을 싸 잡아서 데모한다고 하고
다 백수에 할일없는 놈들 뿐이라고 말해요.
4대 1은...이길 수가 없어서..ㅠㅠ
쌈밖에 안나더라고요. 그냥 저희 집에서 저 하나라도 알고 있으니 다행이다라고 작게 위안만 하고 있어요..ㅠㅠ
Commented by 백합향기 at 2008/06/28 22:48
일반인들은 그렇게 밖에 생각 못합니다. 실제로도 제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거기에 애들을 동원한건 진짜 잘못된거라 생각합니다.
근데 남편분이 조금만 말을 잘했다면 괜찮았을지도.... 근데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을 걱정하는걸 보니 괜히 심통나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버렸거든요.

이미 저도 다른사람들과 고립되었다고 해야 하나요....
저도 먹고 사는 일만 아니라면 진짜 집회 나가고싶은 심정이긴 하지만....
Commented by 파냥 at 2008/06/28 23:08
/초령사신님...네 그래서 저도 그냥 가족들하고는 이 이슈에 대해서는 이야기 안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속편하죠
/백향님...님이 오늘 올리신 글 보고...님도 이 사태의 본질을 보고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과격해지는 시위가 싫고, 사실 그 누구보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저도, 사실 제 아이가 있었다면, 절대로 집회에 데리고 나가진 않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애엄마인 친구들, 동료들이 어떤 심정으로 아이들과 함께 집회에 나가는지는 압니다. 물론 그 사람들이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 절박한 심정을 안다는것뿐이죠.
백향님은 정말로 사람들이 대통령을 '스트레스 해소'로 이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대통령의 권위는 국민에게서 나옵니다. 그런데 님 글을 보니 대통령을 일반 국민보다 '높은' 위치에서 국민을 '지배'하는 사람으로 인식하시는 걸로 보이더군요.
Commented by 붕어가시 at 2008/06/29 00:22
10년째 "아버지, 정말 ㅈㅅ에서 나오는 말을 정말 믿으세요?"라고 묻고 내빼는 전략을 사용했더니 이젠 아버지도 조금씩 의문을 품으시더군요. 그래도 별 기대는 안합니다. 아내를 포섭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Commented by 파냥 at 2008/06/29 13:28
/붕어가시님...저희 부모님은 저의 지성에 의문을 품으십니다 ㅎㅎㅎ 개인적으로는 이번 일을 통해 마마걸에 가깝던 제 모습을 벗게 된거라 위로하고 있습니다 ㅠㅠ 가족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산다는건 힘들다는거... 요즘 절절히 느끼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직장인 at 2008/06/29 19:27
부모님과는 정치적인 얘기를 나눌만큼 뵐 시간이 나질 않고..
그나마 마눌님이랑 정치적인 의견이 합치해서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파냥 at 2008/06/29 20:18
/직장인님...부모님보다도 부부간에 의견이 다르면 정말 힘들죠. 그렇잖아도 이야기 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남편인데 요즘 대화만 하면 서로 싸우게 되서, 이러다 같이 살아보지도 못하고 갈라서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_- 그래도 직장인님과 다찌냥님은 잘 지내신다니 다행 ^^ (하긴, 두분은 여전히 닭살커플일거 같아요 히히)
Commented by hyunster at 2008/07/02 15:50
저도 부모님과는 아예 이야기가 되질 않아요.. 게다가 제가 아직 어려서인지
논리도 빈약하고 나섰다가는 되려 혼쭐이 나버립니다...ㅠㅠ
되도록 정치적인 이야기는 꺼내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최근 상황은 그렇지 못하니..
특히 부부간에 저렇게 골이 깊으시다면 정말 큰일이겠어요..
Commented by 파냥 at 2008/07/02 17:27
/hyunster님 오랜만이에요 ^^ 저도, 제가 정치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쌓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연륜(?)이 없어서, 나서봤자 혼쭐이 ㅎㅎㅎ 그래도 그나마 아버지는 좀 저랑 생각을 비슷하게 하시는 부분이 있어서 거기에 위안을 얻고 있죠. 남편은 뭐.... 현재는 답이 없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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